최근 들어 호주 출신 밴드들과 팝스타들이 영미 팝계에서 활약하는 사례가 늘어났지만, 사실 70년대만 해도 호주가 대중음악계에 명함을 내민 일은 지극히 드문 일이었다.
에어 서플라이의 전세계적인 성공은 그래서 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에어 서플라이는 1976년 호주 멜버른에서 락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 함께 참여했던 러셀 히치콕(Russell Hitchcock)과 그래험 러셀(Graham Russell) 이 의기투합, 1976년 결성된 이후 77년 데뷔앨범 [Air Supply] 를 발표, 싱글 [Love and Other Business] 가 호주의 팝차트 3위에 오르는 호평을 받았다.
이어 인기가 오르자 소속사인 에픽 레코드사의 의견에 따라 David Moyse(기타), Christon Barker(베이스), Ralph Cooper(드럼) 등을 영입하여 78년 5인조로 새롭게 도약한다.
80년 세계시장 데뷔앨범이자 2집인 [Lost In Love] 를 발표하여 싱글 [ Lost In Love] 를 3위에 [All Out Of Love] 를 2위에 [Every Woman In The World] 를 5위에 링크 시켰으며, 앨범은 플래티넘을 기록하는 전세게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후 크리스턴 바커가 탈퇴하자 데이비드 그린으로 교체했고, 키보드 주자 프랭크 이슬러 스미스 와 기타에 필리핀계 렉스 고를 추가하여 7인조로 81년 2집 [The One That Your Love] 를 발표하여 타이틀곡을 정상에 랭크시켰다.
또한, [Here I Am], [Sweet Dreams]를 각각5위에 올려 놓았으며 전작에 이어 플래티넘을 획득했다.
1982년 3집 [Now And Forever] 를 내 놓아 싱글 [Even The Nights Are Better] 를 5위에 올려놓고 역시 플래티넘을 차지하였다. 1983년 봄에 멤버교체를 단행하는데 데이비드, 렉스, 데이비드 그린이 탈퇴하고 키보드에 케니스 래릭, 기타에 워리스토커, 키보드에 도널드 크롬웰을 맞이하여 트윈키보드 시스템으로 록적인 사운드로구성한 싱글 [Makin' Love Out Of Nothing At All] 을 발표하여 차트 2위에 올렸다.
항상 신선한 감각과 화음으로 이루어진 음악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에어 서플라이는 1993년에 [The Vanishing Race] 를 발표하였다. 이 앨범은 지구상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소수 인종들, 기아, 전쟁등으로 재난을 겪고 있는 지구 각처의 민족들의 아픔과 함께 인류 스스로 에게 경각심을 주는 의미심장한 주제를 담았다.
수록곡중 [Goodbye], [Faith] 그리고 타이틀곡이 호평을 받았다.
* 그래험 러셀: 1959년 6월 1일 영국 노팅햄 태생
13살 때부터 작사와 작곡을 시작했고, 그때 아버지는 재혼을 하게 됐다.
아버지의 재혼으로 가족들은 호주로 건너오게 되는데, 호주로 떠나오기 전날 그래험은 집을 도망쳐 나왔고, 가족들은 그를 남겨둔 채 떠나오고 말았다.
3년 동안 삼촌 집에 머물면서 로컬 밴드의 드러머로 활동했지만 자신이 쓴 노래를 그룹에서 부르게 할 수도 없었고, 또 홀로 공장 노동자로 살아가는 게 싫어서 누나의 충고에 따라 호주 멜버른으로 건너와 가족과 합류하게 됐다.
그리고 거기서 다른 밴드에 가입했지만 역시 자신의 노래를 들으면서 드러머 생활을 할 수는 없었다.
그때 그래험은 멜버른 프로덕션에서 공연할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오디션 광고를 보게 됐고, 코러스 부분의 우승자로 뮤지컬에 동참하게 됐다.
* 러셀 히치콕 : 1949년 6월 15일 멜버른 태생.
시드니로 건너가 백화점에서 일하기도 하고, 컴퓨터 부품 회사에 다니면서 1976년, 러셀 히치콕은 시드니에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오디션 광고를 보았다.
시드니에서 낙방의 고배를 마신 러셀 히치콕.
멜버른에서 한번 더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주머니를 몽땅 털어 멜버른행 비행기표를 구입, 300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당히 합격했다.
그리고 거기서 그래험을 만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