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서산낙조(西山落照) 떨어지는 해는 내일 아침이면 다시 돋아오건마는 황천 길이 얼마나 먼지 한 번 가면은 다시 못온다네. (아니리) 옛날 서울 장안에 이정승 김정승 최정승이 재산은 많으나 슬하에 일점혈육이 없어 명산대찰에 불공이나 드려서 아들딸 낳갔다고 명산대찰을 찾아간다 (창) 목욕재계를 정히 하고 세류(細柳)같은 가는 허리 한 님 덤북 이고서 명산대찰을 찾아가는데 때는 마침 어느 때냐 양춘가절(陽春佳節)에 봄 들었구나 온갖 잡목이 무성하다 오다 가다 가닥나무, 가다 오다 오동나무, 십리절반에 오리나무, 이 나무 저 나무 노가지 향나무, 왜철쭉 진달래가 만발했는데 치어다보니 만학천봉(萬壑千峯) 굽어 살피니 백사지(白沙地)로다 (아니리) 이렇게 명산대찰 찾아가서 아들딸 낳아 달라고 백일 기도를 드리는데 상탕(上湯)에 메를 짓고 중탕(中湯)에 목욕하고 하탕(下湯)에 수족 씻고 촛대 한 쌍 벌려 놓구 향로향단(香爐香壇) 불 갖추고 백일 정성을 드리는데 (창) 「비나이다 비나이다 칠성님전 발원(發願)이요 부처님 전 공양이오 아들 낳든 딸을 낳든 그저 달덩이 같은 것 하나씩만 낳게 하여 주옵소서」 (아니리) 이렇게 빌었더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달부터 삼부인(三夫人)의 뱃속에 무엇 하나씩 생기던가 보아요 하루는 삼부인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꿈 이야기를 하는데 제일 먼저 이 정승 부인께서 한 마디 하는데 아이구 난 저번 때 꿈을 꾸는데 아- 갑자기 하늘이 쩍 벌어지더니 달 세 개가 뚝 떨어지길래 달 한 개를 치마폭에 싸가지고 오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꾼 지 며칠 안 되었는데 요즘은 뒷다리가 뺑뺑하고 골머리가 자끈자끈 아픈 게 그저 먹고 싶은 건 시금털털한 호박 짠지나 한 그릇 먹었으면 좋겠어」 김 정승 부인이 있다가 하는 말이 「아- 나도 접때 꿈을 꾸었는데 하늘이 벌어지더니 달 네 개가 뚝 떨어지길래 달 네 개를 받아 본 꿈을 꾸었는데 나도 밥을 먹으면 생쌀 냄새만 나고 물을 먹으면 해감 냄새만 나고 그저 먹고 싶은 건 시금털털한 개살구나 한 그릇 먹었으면 좋겠어」 최 정승 부인이 있다가 하는 말이 「아- 나도 꿈을 꾸었는데 하얀 백발 노인이 오더니 달비 한 쌍을 주길래 달비를 배배 틀어서 치마폭에 싸서 넣는 꿈을 꾸었지」 그달부터 삼부인이 태기 있어 한두 달에 피가 되어 다섯 여섯 달에 오장 육부가 생겨 가지고 아홉 열 달에 세상 밖에 고이 나올 적에 제일 먼저 이 정승의 부인께서 아이를 낳는데 이 양반의 성질이 아주 깍쟁이라 아이를 낳는데 아주 괴상망측하게 아이를 낳소 (창) 「아이고 배야 데리고 배야 우리 영감이 나를 예뻐하고 사랑할 적에는 좋더니만 요런 땐 정말 죽갔구나 아이구 배야」 (아니리) 이렇게 떡 아이를 낳는데 바깥에 있던 정승이 보니까 자기 부인이 아이를 낳는데 얼른 들어가서 아들인가 딸인가 보았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 옆집 할머니한테 달려가서 하는 말이, 할머니.(아이구 그 누구요-할머니) 우리 마누라가 뭘 낳기는 낳는데 할머니가 와서 좀 봐주세요 그래서 할머니 얼른 달려와 보기는 보았으나 이 할머니 눈이 잘 안 보여 희미한지라 손으로 만져봐야 할 형편이라 손으로 썩 더듬어 내려가보니 뭣하나쯤 달고 나왔으면 했는데 그만 미끈덕 내려가 버리니 애그머니 조개를 낳네 이렇게 세 집서 하나씩 낳기는 낳았는데 신수가 불행턴지 한 집은 딸을 낳고 또 한 집은 계집애를 낳고 또 한 집은 여자를 낳았읍네다 이 세 아기의 이름을 짓되 어떻게 짓는고 하니 이 정승의 딸 이름은 태몽 꿈꿀 적에 달 세 개를 받아 보았다는 꿈을 꾸고 그 애를 낳았다고 해서 꿈을 따라서 세월네라고 이름을 짓고 김 정승의 딸 이름은 꿈에 달 네 개를 받아 보았다고 해서 네월네라고 이름을 짓고 최 정승네 딸의 이름은 백발노인한테 달비 한 쌍 받아서 배배 틀어 치마폭에다 쌌다는 꿈을 꾸고 애를 낳았다고 해서 배뱅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 세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서너 살 되고 보니 하루는 삼정승(三政丞)이 자기 딸들을 안고 둥둥 타령으로 세월을 보내는데 (창) 어화둥둥 내 딸이야 둥둥둥 내 딸이야 저리로 가거라 뒷맵시 보자 이리로 오너라 앞맵시 보자 둥둥둥 내 딸이야 명산대찰에 불공드려 아들 낳자고 불공드려 딸이란 말이 웬 말이냐 둥둥둥 내 딸이야 네가 요렇게 예쁠 적엔 너의 어머닌 얼마나 예쁘랴 둥둥둥 내 딸이야 딸일망정 고이 길러 외손봉사(外孫奉祀)하여를 볼거나 둥둥둥 내 딸이야 (아니리) 이렇게 세월이 유수(流水)와 같이 흘러 물 준 오이 자라듯 무럭무럭 자라나서 세월 네 네월네는 시집가서 아들딸 낳고 다- 잘 사는데 가운데집 배뱅이는 늦게 시집을 못 가고 있다가 남의 가중(家中)에 약혼해 놓고 예장(禮裝) 옷감을 태산같이 받아 놓고 낮에는 바느질 저녁이면 물레질하여 시집가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 마침 절의 어여쁜 상좌중이 걸립을 나려왔다가 마침내 배뱅이네 문앞에 와서 걸립을 하게 되었다 (염불) 일심(一心)으로 정념(精念)은 극락 세계라 보호응 나무아미타불이로다 염불이면 동참(同參) 시방(十方)에 어진 시주님네 평생 심중에 잡순 마음 연만(年滿)하신 백발노인 일평생을 잘 사시고 잘 노시다 왕생극락(往生極樂)을 발원(發願)할 제 죽음길에도 노소 있나요 늙으신네는 먼저 가고 젊은 청춘 나중 갈 제 공명천지(公明天地)도 하느님 아래 흘러가는 물이라도 선후 나중은 있겠구료 수미산천(須彌山川) 만장봉(萬丈峰)에 청산녹수(靑山綠水)가 내리는 듯이 차례(次例)야 차례로만 흘러 시왕극락(十王極樂)을 나리소사 나무아미로다 야하에- 나무아미타불이로다 (아니리) 이때에 배뱅이가 염불 소리를 듣고 내다보니까 어여쁜 상좌중이 염불하고 있는데 아주 염불도 잘하고 생기기도 아주 잘 생겼단 말이야요 배뱅이는 바느질을 내던지고 상좌중만 멍하니 내다보고 있는데 상좌중이 안방을 보니까 아주 어여쁜 아가씨가 자기를 내다보고 있는데 아주 잘생겼단 말이야요 얼마나 잘 생겼던지간에 상좌중이 그 아가씨를 보고서 그 자리에서 녹아 가지고 염불을 하는데 이렇게 했어요 (창) 억조창생(億兆蒼生) 만민시주(萬民施主)님네 이내 말을 들어 보소 인간 세상에 나온 사람 빈손 빈몸으로 나오셔서 물욕탐심(物慾貪心)을 내지 마시오 물욕탐심(物慾貪心)은 기불탐(其不貪)이요 백년탐불(百年貪物)은 일조진(一朝塵)이라 아하에 에헤나 시주하오 시주하오 시주 시주 (아니리) 이렇게 염불하다가 녹아 가지고 걸립이고 염불이고 다 집어치우고 절에 가서 밤낮 생각하느니 그 아가씨 즉 배뱅이 아가씨 생각만 하다가 이 상좌중이 배뱅이 때문에 병이 들어 거진 죽어갈 제 그 절의 주지가 배뱅이 때문에 병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 가지고 이 병든 상좌중 살릴 계교를 꾸미는데 여러 중들이 싸리나무를 베어다 채독을 결을랴고 싸리나무를 베러 올라가는데 (창) 베러 가세 베러 가세 싸리나무를 베러 가세 싸리나무를 베어다가 싸리채독을 결어가지고 우리 상좌중 살려 보세 싸리나무를 베러 가세 한 가지 덤뿍 싸리나무 저 가지 덤뿍 싸리나무 싸리나무를 베어다가 우리 상좌중 살려를 보자 (아니리) 이렇게 싸리나무를 베어다가 채독을 결어가지고 그 채독 속에다 병든 상좌중을 집어넣어 가지고 여러 중들이 채독을 걸머지고 배뱅이네 집을 찾아가는데 (창) 간다 간다 간다 간다 배뱅이네를 찾아간다 어서 가자 바삐 가자 배뱅이네 집을 찾아가자 당도했네 당도했네 배뱅이네 집을 당도했네 (아니리) 이렇게 채독을 걸머지고 배뱅이네 집을 찾아가서 배뱅이 아버질 찾아서 하는 말이 「우리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중들인데 밀가루 한 채독을 걸립했는데 이 밀가루는 우리 절에 불공드릴 때 쓸 밀가루이오니 정승댁 제일 깨끗한 방에다 좀 두었다가 주십시오」하고 중이 든 채독을 밀가루 채독이라고 속이고 부탁을 하니까 배뱅이 아버지는 정말 밀가루 채독인 줄 알고 깨끗한 방에 갖다 둔다는 것이 자기 딸 자는 배뱅이 방에다 갖다 놓아 두게 되었습니다 이 채독 속에 있는 중은 두 눈을 멀뚱멀뚱하고 앉았는데 한방중쯤 되어 가지고 배뱅이가 예장(禮裝) 받아 좋고 물레질하다가 생각나기를 낮에 중들이 왔다 갔다 하던 생각을 해 보니까 아무 때 연분에 자기 집에 동냥 왔던 상좌중의 생각이 난단 말이야요 그저 시름없이 하는 소리가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물레질을 했어요 (창) 삼승(三升) 팔승(八升) 십이승(十二升) 나서 어느 낭군을 의복해 줄까 보고지고 보고지고 상좌중이 보고지고 (아니리) 아- 채독 속에서 듣자니까 그 여자가 소리를 한단 말이야요 채독 속에서 생각하길 에라 내가 저 소리를 한 마디 받아 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중이 한 마디 해 보는데 (창) 「보고나 싶으면 제가 와서 보겠지 그립다 사정을 눌다려 하노」 (아니리) 배뱅이가 깜짝 놀랐죠 아- 채독 속에서 소리가 나는데 밀가루가 소리칠 리는 만무요 그래서 또 한 마디 하는데 (창) 「귀신이 와서 흉내를 내나 사람이 와서 흉내를 내나 보고지고 보고지고 상좌중이 보고지고」 (아니리) 상좌중이 또 한 마디 하는데 (창) 「네가 진정코 날 보고 싶거든 채독 뚜껑을 열고 보아라」 (아니리) 그때에는 배뱅이가 은장도를 꺼내 가지고 채독 뚜껑을 북 뜯고 보니까 귀가 박죽 같은 중이 하나 앉았는데 꺼내 놓고 자세히 보니까 아무 때 자기 집 동냥 왔던 상좌중이라 얼마나 좋던지 두 남녀가 재미있게 노는데 낮에는 채독 속에다 집어넣고 밤이면은 채독 밖에다 꺼내 놓고 노는 것을 몇 달간 재미스럽게 놀다가 하루는 상좌중이 하는 말이 「자- 우리가 이렇게 부모님 눈을 속여가면서 재미있게 놀아야 살 도리가 없으니 나도 저 황해도 봉산에 가서 걸립이나 해가지고 명년 이삼월에 돌아올 테니 그때 만나서 잘 살도록 해봅시다」 이리 언약을 굳게 맺고 상좌중은 황해도 봉산으로 나간 후 배뱅이는 2, 3월까지 기다렸으나 2, 3년이 지나가도 기다리는 상좌중이 아니 와서 배뱅이가 기다리다 못해 병이 나서 병세가 깊어갈 제 (창) 이 때에 황천에서 일직사자(日直使者) 감북사자 축부사자 배뱅이 잡으러 나오니 뉘 영이라 거역하리요 뉘 분부라 거역하리까 (아니리) 이 때에 배뱅이 아버지는 배뱅이를 살리겠다고 약을 지으러 바깥으로 나간 후 배뱅이 오마니 혼자 배뱅이 병세를 보고 있을 적에 배뱅이 하는 말이 「어머니 나는 가요 빨리 부엌에 나가서 신 세 켤레 무명 아홉 자 밥 세 그릇 등대(登待)하십시오 나는 가요 어머니」 (창) 「이애 배뱅이야 말 들어라 이것이 웬 일이냐 늙은 부모 우리를 두고 혼자 간다니 웬 말이냐 네가 죽고 내가 살면 무슨 소용 쓸 곳 있나 배뱅이야 배뱅이야 너의 아버지 약 지러 갔다 정신차려 일어나라 배뱅이야 배뱅이야」 (아니리) 그런데 또한 배뱅이 아버지는 약 지러 간다고 술이 잔뜩 취해 가지고 퀴퀴한 건재(乾材) 약첩이나 지어 가지고 돌아와서 「여보 마누라 마누라 약 지어 왔네 약 배뱅이 어떻게 됐나 배뱅이 응?」 「여보 영감 배뱅인지 세상이 매생이오 매생이 팔아 당도릴 사주셔도 모르겠소 어서 들어가보시오」 배뱅이 아버지는 얼른 들어오더니 죽은 배뱅이를 자는 줄 알고 「이애 배뱅이야 약 먹어라 이애 배뱅이야 약 먹어 응? 아이구 배뱅이 죽었구나 아이구 이거 어떤 놈이 장작개비를 먹여 죽였나 아래위가 빳빳하구나」 (창) 약탕관(藥湯罐)도 쓸 데가 없고 약 지어 온 것도 어디다 쓰랴 약탕관을 문 밖에다가 타르르 내던지고 앙천통곡(仰天慟哭)에 울음 운다 (변조變調) 이때에 불쌍히 죽은 배뱅이 열 두 매끼 졸라 가지고 서른 세 명 역군(役軍)들이 상두대채 둘러메고 북망산(北邙山)으로 올라갈 제 (상여소리) 너너 너너 너거리 넘차 너어 배뱅이 오마니 거동 보소 상여 뒤채를 부여잡고 허방지방이 나오면서 이애 배뱅이야 말 듣거라 너 오만 느 아반 산 걸 두고 혼자 간다니 웬 말이오 너거러 넘차 너어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오대산 평지가 되고 대해강수(大海江水)가 먼지가 날 적에 돌아오며 병풍 안에 그린 황계(黃鷄) 짜른 목을 길게 빼고 꼬꼬 울적에 돌아를 오나 너거리 넘차 너어너 삼천 칠백 리 들어갈 제 서풍이 불면 동으로 가고 남풍이 불면 북으로 갈 제 북풍한설 찬바람에 눈물이 앞을 가려 나 못 가겠네 너거리 넘차 너어 황천길로 올라갈 제 이 생강(生江)도 서른 세 강 저 생 강도 서른 세 강 칠성강(七星江) 아흔 아홉 강 건너서니 백사장 세모래밭에 눈물이 앞을 가려 나 못 가겠네 어하 넘차 너어 저승길이 멀다더니 오날 내게 당해서는 대문 밖이 저승이로구료 어하 넘차 너어 일직사자(日直使者) 손을 끌고 월직사자(月直使者)는 등을 밀어 어서 가자고 재촉을 하니 뉘 영이라 안 갈소냐 어하 넘차가 너어 (아니리) 이렇게 북망산천 올라가서 불쌍한 배뱅이 깊이깊이 묻어 놓고 서른 세 명 역군들이 달구질을 하는데 이렇게 했겠다 (달구소리) 에- 허리 상달구야 에- 허리 상달구야 여보시오 친구님네 달구채를 부여잡세 (후렴) 에 -허리 달구야 먼뎃사람 듣기 좋게 곁엣 사람 보기 좋게 에 -허리 달구야 이 묘 쓴 지 삼년만에 에 -허리 달구야 만사대통하올적에 에 -허리 달구야 아들 낳으면 효자 낳고 에 -허리 달구야 딸을 낳으면 효녀로다 에 -허리 달구야 말을 놓으면 용마되고 에 -허리 달구야 소를 놓으면 황우로다 에 -허리 달구야 (아니리) 이렇게 달구질이 끝이 나고 평토제를 지내야 됭 터인데 평토제 지낼 사람이 없단 말이야요 그래서 그 동네 짖궂은 청년이 평토제를 지내는데 이 친구가 아주 또 술이 어떻게 취했던지 입에 술지게미가 줄줄 흐르는 친구가 평토제를 지낸다고 하는데 (창) 어이어이 배뱅이 아가씨 무덤에다 평토제를 잘 지내니 곶감 하나만 더 먹게 해주우 어이어이 배뱅이 아가씨 대추 하나만 먹게 해 주소 어이 어이 (아니리) 이렇듯 배뱅이를 북망산천에 깊이깊이 묻어 놓고 집에 돌아와 배뱅이 부모님은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가 하루는 두 늙은이 하는 말이 자 우리 배뱁이 하나 죽었으니 재산 두어두면 무엇에 쓰겠소 우리 각도 무당들이나 불러서 배뱅이 죽은 넋이나 한 번 더 듣게 우리 굿이나 한 번 해 봅시다 이렇게 의논해 가지고 굿한다고 광고를 써다 붙였더니 무당들이 모여드는데 자그만치 전국에서 오천 칠백 일흔 두명이 모여들었단 말이요 배뱅이 아버지가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까 이 여러 무당 굿을 다 했다간 있는 재산 다 없어질 판이요 그래서 그 동중 제일 부질부질한 청년 하나를 불러가지고 이 여러 무당에게 굿을 시키되 잘하는 무당이면 그냥 두어두고 잘 못하는 무당이면 그냥 그 자리에서 내쫓아라 이렇게 무당 점고를 마치는데 제일 먼저 황해도 해주서 온 무당이 보혈이굿을 한바탕 하겠다 보굿 (후렴) 보혈야오 보혈야오 가망마누라 보혈야오 높은 남게 황실래요 얕은 남게 청실래요 황밤 대추 시실과는 제후지신의 차지로다 보혈야오 보혈야오 가망마누라 보혈야오 앞마당의 터주대감 뒤뜰 안의 굴뚝장군 정성 지성 발원이오 보혈야오 보혈야오 가망마누라 보혈야오 (아니리) 이 무당은 너무 까불기만 하니까 이애 넌 나가라 무슨 굿을 그렇게 하느냐 굿을 좀 할라면 이렇게 점잖게 해야지 (창) 에- 에 가을이면 봄 보자 봄이면 가을 보자 나를 속이느냐 여- 어허야 에헤야 (아니리) 아- 이렇게 굿을 해야지 자주 까불기만 하니 이게 굿입니까 요다음 무당은 아주 깐깐한 무당이 한 마디 해 보는데 강원도서 온 무당이 한 마디 하겠다 (창) 「여하 임금 만세 야- 만세 오날날에- 날에 쾡쾡에 날에나 날에 원하는 금일 사바세계 남섬부주(南贍部洲) 해동제일(海東第一) 우리 나라 여라 임금 만세야 만세 오날날에- 나 날에」 (아니리) 이 무당도 그만 쫓겨 나갔죠 요다음 무당은 황해도 봉산서 온 무당이 한 마디 하는데 (창) 「여-헤 여헤미 타아 염불이로다 이댁 가중(家中) 금년 신수가 대통할 제 오는 소망 끌어 드리고요 가는 소망 휘어 드릴 적에 무슨 생활하시든지 소원 성취 발원이오 여- 에허- 타 염불이로다」 (아니리) 이렇게 여러 무당들이 굿을 해도 배뱅이 혼이 영- 오지 않아서 배뱅이 오마니 아버지 안방에 가서 머리 싸매고 누웠으며 굿청에는 내다보지도 않고 속을 태우고 있을 적에 이때 마침 평양 건달 청년이 와서 굿을 하게 되었는데 이 청년의 내력을 들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청년네 집의 재산은 무척 많은데 아버지가 무서워서 영 돈을 마음대로 못 써서 이 청년이 원이 되던 중 어마니 아버지가 좋은 재산 그냥 두고 세상을 떠나 버리니 이젠 됐구나 하고 논밭 전지(田地) 다 팔아 가지고 지전(紙錢) 깔쭈기 돈을 옆차기에 잔뜩 넣어 가지고 시내 일류 요리점에 먹고 마시며 소첩 대첩 시생첩까지 거느리고 거들먹거리며 즐기다가 돈 다 털어먹고 담배는 길바닥에서 꽁초 주워 태우고 머리는 못 깎아서 더벅머리가 되고 바지 저고리는 방울달린 옷이 되어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니 드디어 기생첩한테서 좇겨나 오갈 데 없는 알거지가 되어 신세타령 부르면서 정처없이 떠나니는데 (창) 간다간다 나는 간다 정처없이도 이 몸은 떠나간다 평양감영아 잘 있거라 이 몸이 한없이 떠나가는구나 (아니리) 이럭저럭 온다는 것이 배뱅이굿하는 동리를 우연이 당도하여 그 동리 어떤 주막거리에 앉아있는데 노자 조금 가지고 떠났던 것 다 없어지고 배는 고픈데 한 쪽을 바라보니까 조그마한 오막살이집이 있단 말이야요 이 청년이 생각하기를 에라 내가 돈은 없지만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니 한잔 달래 먹고서 나중에 경을 치든가 어떻게 할 작정으로 찾아 들어갔지 「여보 할머니」 「아이고 건 누구요? 어서 들어오십시오」 (아니리) 진종일 있다가 손님 한 분이 오니까 맞돈짜리인 줄 알고 좋아서 반색을 하겠다 「할머니 술 한 잔 주십시오」 「아- 어서 잡수시우」 하고 술 한 바가지 얼른 갖다 주었다 아- 이 청년이 이것 한 잔 먹고 보니까 범 모기 잡아 먹은 것 같고 고래 전지 잡아 먹은 것 같아 더 먹고파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때마침 사방을 둘러보니까 아무도 없단 말이야요 에라 내가 이젠 어쩔 수 없다 강제로 뺏어서 먹고 나중엔 죽든지 살든지 경을 치든지 할 작정으로 「지금 먹은 술 외상인데 외상에 한 잔 더 주구료」 「워 외상? 네가 날 언제 보았다고 외상? 야- 요놈의 자식! 눈앞에 핏줄이 왔다갔다 하는 게 아무 때라도 사람 잡아먹고 피똥 쌀 자식이로구나 당장 술값 내라!」 「아니 이놈의 할머니 안 주겠시오? 술 외상(外上) 안 주면 할머니 모가질 똑 잘라 놓겠다」 이 할머니가 어찌 혼이 났더니 「이애 다 먹어라 다 먹어」 이 청년이 허가맡은 김에 술동이째 들이마시고 술 주정을 한참 하다가 바깥 바람이나 쏘이려고 나갔더니 온 동네가 왁자지껄하지 않겠어요 그래 웬일이냐 싶어 되돌아와 할멈에게 물었습니다 「아- 바로 뒷동네 이 정승, 김 정승, 최 정승이 명산기도하여 앞집이 세월네 뒷집이 네월네 가운뎃집이 배뱅이를 낳았는데 세월네 네월네는 시집을 가서 잘 사는데 가운뎃집 배뱅이는 늦게 시집을 못 가고 있다가 남의 가중(家中)에 약혼해 놓고 예장 옷감을 태산같이 받아 놓고 시집가려고 하다가 절의 상좌중이 왔다갔다 하더니 그만 병이나 죽었단다 그러니 배뱅이 넋을 듣겠다고 각도 무당 불러 놓고 굿하느라고 북 장구 치고 야단법석이란다 불쌍하게 죽었지 불쌍하게 죽었어」 「아니 할머니 그 얘기 하면서 왜 그렇게 슬퍼하십니까?」 「이애 그애는 내가 길러 주었단다 내가 배뱅이 젖 유모 노릇을 했단다」 「그럼 시집가려고 할 적에 예장 옷감 받아 둔 것도 많겠네요」 「이애 예장 옷감이 이렇게 여러 가지란다 달이 돋아 월광단(月光緞) 해가 돋아 일광단(日光緞) 길주(吉州) 명천 회령주(明川會寧紬) 명주(明紬) 세 필 삼동주(三冬紬) 흑공단(黑貢緞) 목공단(木貢緞) 만수청산(萬樹靑山)의 운무단(雲霧緞) 제갈공명(諸葛孔明) 와룡단(臥龍緞) 연안자주(延安紫紬) 흰자주 해주자주(海州紫紬) 남자주(藍紫紬) 이렇게 여러 가지란다」 「아니 그뿐이던가요?」 「왜 그뿐이겠니 배뱅이 자라날 적에 배뱅이 할아버지가 배뱅이 나가 놀라고 한 푼 주고 들어와 놀라고 한 푼 주고 잘 놀라고 한 푼 주고 귀엽다고 한 푼 주신 노랑 돈 아흔 아홉 냥 일곱 돈 칠푼 오리 꽁꽁 묶어서 종톨바구니 속에 넣어 두고 죽었단다」 「그뿐이던가요?」 「왜 그뿐이겠니」 「세월네 네월네는 지금 어디 있나요?」 「이애 세월네 네월네는 지금 벌써 애를 낳아서 하나씩 업고 배뱅이네 집에 와서 배뱅이 혼이 오길 기다리고 있단다 그리고 배뱅이 어머니 아버지는 배뱅이 혼이 어느 무당한데 실려 오지를 않아서 매일같이 울고만 있단다」 「할머니 잘 알았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갑니다」 할멈 「아니 이 녀석아 술 값은 안 내고 가니? 술 값 내고 가거라」 「네- 술 값은 오는 길에 갚아 드릴께요」 이 청년이 배뱅이 내력을 다 알아 가지고 배뱅이네집 찾아가서 굿 한거리 하려고 하는 말이 「주인장 계십니까?」 「네 있습니다」 「다름아니라 나는 지나가는 박수무당인데 나 굿 한 거리 합시다」하니까 거기 있는 여자 무당들이 남자 무당이라고 절대 반대한단 말이야요 그래서 이 청년이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까 배뱅이 죽은 내력을 탁주집 할머니한테서 다 알아가지고 왔으니 무당 소리나 잘하면 굿 한 거리 하라고 할 것 같아서 굿청으로 뛰어 들어가며 무당 소리를 한 마디 하는데 (창) 「에- 어떠한 무당이며 어떠한 성신(聖神)인 줄 알았더냐 앞다리 선각(先脚)에 뒷다리 후각(後脚)에 양지머리 칼 꽂고 줄 풍류가락에 놀던 무당이 들어왔다고 여쭈어라」 (아니리) 이때에 여자 무당들이 가만히 보니까 이건 진짜 무당이란 말이야요 그래 한 여자 무당이 나오면서 비는 소리가 (창) 「쇠술로 화식(火食) 먹는 인간이 모르는 건 많고 아는 것 없사와 신장(神將)님 오시는 길에 길맞이 못한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아니리) 이 청년이 가만히 보니까 되긴 될 모양이란 말이야요 (창) 「너희가 정 그렇다면 고깔 장삼이나 한 벌 내다가주면 내 성수대로 한 거리 놀고 가겠노라」 (아니리) 고깔 장삼을 내다 주니 이 건달 청년이 고깔 쓰고 장삼을 입고 보니 그럴 듯한 박수무당이 되었단 말이야요 자- 그러나 배뱅이 혼이 왔다고 한바탕 울어야 할 판인데 그 여러 구경군 가운데 어느게 배뱅이 어머니 아버지인지 알 수가 있어야죠 이 청년이 생각하길 배뱅이 혼이 왔다고 설게 울면 그 중에 제일 설게 우는 사람이 있으면 가서 부여잡고 탁주집 할머니한테서 들은 대로 모조리 사정을 해 볼 작정으로 배뱅이 혼이 왔다고 한바탕 우는데 (창) 「왔구나 왔구나 배뱅이 혼신이 평양 사는 박수무당의 몸을 빌고 입을 빌어 오늘에야 왔구나 어마니 어마니 우리 어마니는 어디 가고 딸자식 배뱅이가 왔구나 하는데도 모른 체하나요 살았을 적 같으면 내가 어델 갔다 온다면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화다닥 뛰어나오더니만 죽어지고 길갈라서면 쓸 곳이 없구료 오면은 온줄 알며 가면은 간 줄 아나 오마니 오마니-」 (아니리) 때마침 함경도집 할머니가 와서 있다가 하는 말이 「아이고 아이온다 아이온다 하더니만 배뱅이 혼이 오늘이야 왔읍지비야」 이 청년이 그 할머니 말씨를 듣고 보니까 말씨가 함경도 사투리란 말이야요 (옳지 배뱅이 어마니가 아니로구나) 말씨를 듣고 눈치를 채고 또 한 마디 하는데 (창) 「우리 어마니는 어델 가고 함경도집 할머니가 나오시나요 함경도집 할머니 그 지간 기체후일향만강(氣體候一向萬康)하옵니까 나는 죽어서 육신은 북망산천에 깊이 깊이 묻혔건만 영혼이야 죽었으며 나 자는 침방(寢房)이야 변했겠소 내가 시집가려고 할 제 예장(禮裝) 옷감 받아 둔 것 달이 돋아 월광단(月光緞) 해가 돋아 일광단(日光緞) 길주(吉州) 명천(明川) 회령주(會寧) 바리바리 받아 둔 것 배뱅이 혼이 꼭 왔으니 나 보는 데 박수무당 앞에다 내다 주구료 어마니 어마니…… 예장(禮裝) 받아 둔 거라도 다 내주면 황천에 가서라도 어머니 보고플 때 꺼내 놓고 보겠으니 빨리 빨리 내다 주오 어마니 어마니」 (아니리) 함경도집 할머니가 다시 듣고 보아도 배뱅이 예장 받아둔 것까지 찾아 내는 걸 보니까 이건 배뱅이 혼이 꼭 왔단 말이야요 안방에 들어가서 하는 말이 「아이고 배뱅이 어마니 빨리 나가 보소 이번에는 배뱅이 혼이 꼭 왔읍지비야」 배뱅이 어머니가 이 소릴 듣고 얼른 나와서 이번에는 정말 배뱅이 혼이 왔나 안 왔나 듣고 있는 무렵에 이 건달 청년 가짜 무당은 술장수 할머니한테 알아들은 대로 모조리 주워 섬기는 그때야요 (창) 「반갑고 반갑구나 고향 산천이 반갑구나 고향 산천 초목들도 나를 보고 반기는데 우리 오만 아버지는 어데를 가고 딸자식 배뱅이가 온 줄을 몰라 주나요 오만 아바지가 날 이렇게 괄세를 한다면 내가 자라날 적에 우리 할아버지가 나가 놀면 한 푼 주고 들어와 놀면 한 푼 주신 노랑돈 아흔 아홉 냥 일곱 돈 칠 푼 오 리 꽁꽁 묶어서 종톨바구니 속에 넣어 둔 것 배뱅이 혼이 꼭 왔으나 보는 데 박수무당 앞에다 내다 주소 어마니 어마니 어마니 아버지는 야속하고도 무정하외다 불초 여식 딸자식이라도 왔다고 하는데 너무도 괄세가 심하구료 어마니 어마니」 (아니리) 배뱅이 어마니가 이 소릴 듣고서 어찌 슬프던지 울음통이 급하게 터져 나오는데 (창) 「아이고 내 딸이야 내 딸이야 여보 영감 빨리 나와요 이번에는 정말 배뱅이 혼이 꼭 왔쇠다 빨리 나오소 아이고 내 딸이야 내 딸이야 살아서도 정신이 똑똑하더니 죽어서도 정신이 그대로 있구나 내 딸이야」 「어마니 말 들으시오 날 같은 불초 여식은 길렀다가 무엇에 쓰려고 길렀겠소 오만 아반 신세를 만분지일(萬分之一) 이라도 갚자고 했더니 나는 죽었구료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며 당상학발(堂上鶴髮) 늙은 양친부모 버리고 가는 나는 가고 싶어 갔겠소 나는 내 명에 죽었소이다 조금도 설워 말고 잘 계시오 어마니 어마니 어마니는 보았으나 아바지는 어데를 갔소 마지막 왔던 길에 아바지 얼굴이라도 보고 갑시다 아바지-」 (아니리) 배뱅이 아버지는 나와 서 있다가 이 소리를 듣고서 점잖은 체모(體貌)에 목을 놓고 울지는 못하고 배만 두꺼비배처럼 불룩불룩하다가 울음을 우는데 「이애 배뱅이야 그까짓 예장 옷감이 다 무엇이냐 너의 애비 너의 에미 다 잡아가고 우리집 기둥뿌리까지라도 다- 빼가거라」 이렇게 울며 나와섰는 걸 보니까 두 늙은이가 배뱅이 어마니 아바지가 틀림없단 말이야요 이렇게 눈치로 다 배뱅이 부모는 찾아보았는데 한쪽을 바라보니까 어떤 젊은 여자가 둘이 어린 애를 업고 와서 자꾸 울고 있단 말이야요 (옳지 배뱅이가 자라날 적에 앞집에 세월네 뒷집에 네월네가 같이 자라났다더니 저게 아마 세월네 네월네가 저렇 게 와서 울고 있나 보다) 저애들을 만나 보아야 배뱅이 혼이 왔다는 표시가 되어서 배뱅이네 재산을 좀 뺏어서 갈 작정으로 또 한 마디 해 보는데 (창) 「어마니 또 한가지 분하고 원통한 것이 있소이다 나 자라날 적에 자고 깨면 먼산에 달래캐기 춘산(春山)에 나물캐기 하면서 같이 자라난 세월네 네월네가 이 곁에 와 있으면서도 나를 모른 체하는구료 세월네 네월네야 만나 보자꾸나 이리 좀 나오려마 만나보자꾸나 너희가 오늘날 나를 만나보지 않고 그냥 집으로 돌아간다면 내가 굿하고 가는 길에 너희가 업고 온 귀한 자식을 몽땅 다 잡으가겠다」 (아니리) 세월네 네월네가 아이 잡아 가겠다니까 무서워서 업고 온 아이를 쓱 돌려 아이 머리를 만져보니까 아이 머리가 뜨끈뜨끈하단 말이야요 진종일 업고 있으니까 달쳐서 머리가 뜨끈뜨끈한 걸 귀신이 잡아 가겠다니까 머리가 뜨끈뜨끈한 줄 알고 이 두 여자가 굿청에 나와 떡 앉는단 말이야요 그러나 또 요게 세월네인지 조게 세월네인지 이름을 또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눈치로 또 한 마디 하는데 (창) 「세월네 네월네야 말 들어 보아라 나는 죽어서 북망산천에 가서도 이름을 고치지 않았다만 너희는 나 죽은 후에 이름이나 고치지 않았느냐?」 (아니리) 세월네가 이 소리를 듣고서 가만히 있었으면 괜찮을 걸 주책없이 또 한다는 소리가 「이애 내가 이름을 왜 고치니 얘 나는 너 죽은 다음에 세월네 세월네대로 그대로 있단다 이애」 야- 요게 세월네라고 할 적엔 조건 네월네가 분명하단 말이야 (창) 「세월네 네월네야 아까는 분한지심(憤恨之心)이 나서 그리하였지만 형제지간에 복은 못 주나마 어찌 화를 주겠니 동방삭(東方朔)의 명을 빌고 강태공(姜太公)의 나이를 빌어 선팔십(先八十) 후팔십(後八十) 일백 육십을 점지해 주니 스승군자 속태우지 말고 부디 평안히 잘 살아라 그런데 한 가지 원이로다 너하고 나하고 자라날 적에 자고 깨면 시냇가 빨래질 가면 빨랫돌 위에서 네 손목이 크냐 내 손목이 크냐 하면서 서로서로 만지면서 놀던 손목이니 한번 쥐어 보자꾸나」 (아니리) 세월네 네월네가 이 소리를 듣고서 「이애 난 죽으면 죽었지 손목은 못 대겠다야-」 세월네 네월네는 부끄러워서 돌아서서 손목을 쓱 내민단 말이야요 (창) 「너의 손목을 만져 보니까 살았을 적에 만지던 손목이 그냥 그대로 변치 않았구나 마지막 가는 길에 손목이나 한번 실컷 쥐어 보자꾸나」 (아니리) 그저 섣달 그믐날 흰떡 주무르듯 주물럭주물럭 한참 주물렀단 말이야요 동리 구경군들이 가만히 보니까 박수무당 녀석 아주 괘씸하단 말이야요 (세월네 네월네는 마주 서서 말도 잘 못하는 점잖은 부인인데 막 손목을 잡고 희롱하니 암만해도 이상하다 저녀석이 정말 배뱅이 혼이 왔나 안 왔나 한번 알아보자) 어떻게 아는고 하니 구경군들이 쓰고 온 머리에 쓰는 갓을 주욱 모아다가 굿청에다 올려 쌓아놓고 제일 밑에다 배뱅이 아버지 갓을 갖다가 꽉 꽂아 놓고서 「이애 박수무당아 네가 배뱅이 혼이 꼭 왔느냐?」 「네 꼭 왔습니다」 「네가 배뱅이 혼이 꼭 왔으면 이 갓 중에 배뱅이 아버지가 쓰던 갓 즉 너의 아버지 갓이 이 중에 있으니 네가 배뱅이 혼이 꼭 왔으면은 너의 아버지 갓을 알 테니까 배뱅이 아버지 갓을 찾아 내거라 만일 못 찾아 내면 너는 당장 이 자리에서 즉사하리라」 아이고 이것 박수무당 야단났단 말이야요 인젠 꼭 죽었단 말이야요 박수무당이 생각하길 처음부터 갓을 모조리 찢어 버리면서 사방 눈치나 보다가 죽든지 살든지 할 작정으로 호통을 그럴듯이 하면서 갓을 째는데 (창) 「에- 괘씸하고도 괘씸하구나 양반의 갓과 상놈의 갓을 어따가 함부로 섞어 놓았느냐 우리 아버지 갓 하나만 남겨 놓고서는 모조리 찢어 버리겠다 이 갓을 들고 보니 이것은 우리 아버지 갓이 아니로다」 (아니리) 갓을 쭉 째니까 한쪽에 있던 사람이 「애이고 내 갓 찢는구나」 무당이 눈치를 보니까 여기 갓 임자들이 와서 있는 모양이란 말이야요 눈치를 채고서 이번에는 부지런히 갓을 째는데 (창) 「이 갓을 들고 보니 이것도 우리 아버지 갓이 아니로다 이 갓을 또다시 보자 제쳐나 보고 뒤쳐나 보고 이렇게 보고 저렇게 보아도 우리 아버지 갓이 아니로구나」 (아니리) 갓 임자들이 가만히 보니까 그냥 두었다가는 배뱅이 아버지 갓 하나만 남겨 놓고서 다 쨀 것 같단 말이야요 그때는 갓 임자들이 죽- 들어와서 제가끔 갓을 다 쓰고 달아난 다음에 또 복판에 큼직한 갓이 하나 남는단 말이야요 건달청년 무당이 가만히 보니까 배뱅이 아버지의 우는 동작과 그 갓을 가만히 보니까 이게 배배잉 아버지 갓이 분명하단 말이야요 (창) 「이 갓을 들고 보니 이 갓은 우리 아버지 갓이 분명하구나 먼지가 한 두께 묻었어도 털어줄 사람이 없었으니 이 아니 원통하랴 마지막 가는 길에 아버지 갓이나 털어주자꾸나」 (아니리) 갓을 툭툭 턴단 말이야요 구경군들 하는 말이 「요건 진짜 배뱅이가 꼭 왔구나!」 이 청년이 이렇게 여러 사람들을 속이고 떠나가는데 (창) 떠나간다 떠나간다 배뱅이 혼신이 떠나간다 에- 에헤 에헤야 염불이로다 잘 속았구나 잘 속았구나 배뱅이 어만 아반 잘 속았네 이번 굿에 돈 잘 번 것은 네 덕 내 덕 뉘 덕 해도 술장수 할머니 덕택이라 에- 에헤 에허어미 타-불이로다 술장수 할머니 돈 받으소 천 냥 줄 돈은 만 냥을 주고 만 냥 줄 돈은 억만 냥 줄 테니 논밭 전지(田地)를 장만하여서 부디 평안히 잘 사시오 에- 에헤 에허어미 타-불이로다 이런 굿을 세 번만 했다간 천하각국(天下各國)에 일부(一富)가 되겠구나 에- 에헤 에허어미 타-불이로다 평양 감영 다 팔아먹은 재산 이번 굿에서 반봉창이 되었구나 에- 에헤 에허어미 타-불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