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렌다 리 ....
언제나 힘있는 목소리에 애절한 느낌을 전해주는 창법으로우리에겐 미스 다이나마이트라는 별명으로 더 잘알려진 가수입니다.
물론 그녀의 키가 서양인으로서는 작은 147.5㎝ 라는 단신이기에더욱더 그 별명에 대한 의미가 강렬하지요...
그녀가 연예계에 발을 딛게 된 동기는 6살 때 TV 어린이 탈렌트 콘테스트에서화려한 수상을 하게 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곧 그녀는 당시의 유명 탈렌트 매니져인 듀크 알버튼이라는 사람에게 인정을 받아서그녀의 타고난 재능을 연마하기 시작했다고 하지요
12살도 채 안된 어린나이에 데카 레코드社와 장기 계약을 맺고서데뷔전에 말하는 법, 걷는 법,등 연예인이라면 꼭 갖추어야 할 여러가지 매너와쇼맨쉽을 몸에 완벽히 익히는 준비기간을 통해서 그녀는 하나의 연예인으로서의 완벽한 모습을 갖추었다고합니다.
드디어 1956년 3월 너무나도 유명한[에드셜리반 쇼][스티브 알렌 쇼][테네시 어니포드 쇼] [딕 클락의 쇼][보브 호프 쇼]등수많은 국내외 쇼 프로에 출연하여 명성을 떨치는가운데.....
1956년 Jambalaya,
1957년 One step at a time,
1959년 Sweet nothings 등이 히트하면서 50년대를 대표하는 여자가수로 등장하게되지요
하지만 국내에서는 그녀의 대표적인 노래라면1960년의 최고의 히트곡 [I'm sorry-that's all you gotta do] 와 1962년의 최고의 히트곡 [All alon am i] 가 아닌가합니다.
아무튼 그녀의 히트곡 행진은 계속되어집니다.
브렌다 리의 다이나믹한 매력은 전세계적인 공감을 얻어 그녀는 30개국이 넘는 외국공연을 하였으며 영국서는 여왕을 위해 멕시코에서는 대통령을 위한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고합니다.
한 때 브렌다 리는 세계의 인기 투표에서 세계의 여성 보칼리스트 NO.1 에 선정되기도 하였고 1962년 빌보드지 선정 여성 보칼리스트 NO.1에 벨기에에선 " 에디슨 상" 이라는 것도 수상하는 등 황금시대를 누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공연은 " The Show Must Go On " 이라는것을 모토로하고있어서 한 때는 필라델피아의 한 무대에서 넘어져 척추뼈가 부러지는 중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쇼를 계속해나간 일화도 있다고 합니다.[믿거나 말거나입니다!]
애절한 발라드와 하드 벨팅 록을 구사하던 브렌다 리는 그 후 1970년대로 넘어 오면서 칸츄리 음악으로 음악적 변신을 시도 하였으며 1980년 사이에 Tell me What it's like, The Cowgirl & the dandy , Broken Trust , Nobody wins ,등을 발표하면서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하였답니다.
미스 다이나마이트 ...브랜다 리!
그녀의 목소리는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국내 팝 팬들에게 결코 빼놓을 수없는 존재였으며 특히 다운타운 음악다방에서는 80년대 까지도 꾸준히 신청되어졌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