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손가락 - Golden Best 5



새벽기차

해지고 어둔 거리를 나홀로 걸어가며는
눈물처럼 젖어드는 슬픈 이별이
떠나간 그대 모습은 빛바랜 사진 속에서
애처롭게 웃음짓는데

그 지나치는 시간 속에 우연히
스쳐가듯 만났던 그댄
이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네
허전함에 무너진 가슴

희미한 어둠을 뚫고 떠나는 새벽기차는
허물어진 내 마음을 함께 실었네
낯설은 거리에 내려 또다시 외로워지는
알 수 없는 내 마음이여






캠퍼스 밴드로 대성공을 거둔 다섯 손가락은 산울림에서 여행스케치에 이르는 아마추어리즘의 한 단면을 포괄하고 있으면서도 프로 연주자들에게 긴장감을 주었던 실력 있는 그룹이었다. 이들은 TV 프로그램 <젊음의 행진> 오디션에 참가해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따냈으며 같은 해인 1983년 대학생 가수들의 옴니버스 음반인 <캠퍼스의 소리>에 참가하면서 본격적인 데뷔 무대를 가졌다.

1985년 발표한 이들의 1집에선 임형순의 스트레이트한 보컬이 공명을 자아내던 '새벽 기차'가 라디오를 중심으로 인기가 확산되었으며 이두헌의 드라이한 목소리가 수요일 밤 꽃집으로 인도하던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이 후속타로 장기간 환영을 받았다. 이 노래의 제목과 가사 덕분에 지금도 “비오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이라는 공식이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다. 1집에서는 이외에도 '사라진 가을'이 구매자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얻었다. 이 당시 베이스 주자는 원래 하광훈(작곡가로 유명한)이었지만 녹음 직전에 탈퇴했고 사진은 이우빈이 찍었지만 연주는 조원익이 했다.

아쉽게도 그룹 사운드의 조형으로서는 마지막이 된 이들의 2집은 하이틴들에게 인기 있는 레퍼토리인 '사랑할 순 없는지', '해주고 싶은 이야기', '풍선' 등이 대중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이들의 연주가 절정에 이른 '잃어버린 의미'나 이두헌의 목소리로 진솔하게 울려 퍼지던 '이렇게 쓸쓸한 날엔'이나 '맑은 하늘이 보고 싶어' 등도 앨범의 밸런스를 유지시켜 주는데 한 몫 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 앨범의 백미는 실험성이 돋보이는 연주곡 '빈 지게'이다. 이들은 1집에 이은 2집의 폭발적인 판매고로 1986년 KBS 가요대상 록그룹 부문 상을 받았다.

솔로 제의를 받은 임형순이 그룹의 탈퇴를 선언하며 엔터테이너의 길로 들어서고 두 리더의 의중이 갈리자 멤버들 모두는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자 그간 많은 곡을 만들어왔던 이두헌은 산울림의 김창완이 그랬듯이 혼자 남아 계속 다섯 손가락의 이름으로 앨범을 내놓는다.



'이층에서 본 거리'가 인기를 얻은 3집은 예쁜 노랫말이 인상적인 '늘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가 후속타로 라디오를 탔으며 앨범의 표지와 같이 밤의 이미지가 강한 곡들이 수록되어 호평을 받았다. 이두헌은 이 앨범부터 프로듀서와 뮤지션으로서의 자세로 깊은 인상을 주었으며 차세대 음악 감독의 역량을 과시했다.

다섯 손가락이란 이름으로 발표된 마지막 정규 음반인 4집에서는 송홍섭, 박청귀, 이병우, 이정식 등의 출중한 세션맨들을 끌어들여 가장 뛰어난 음반을 발표했다. 3집의 연주곡을 새롭게 발표한 '오락실에서'가 수록된 이 음반은 하지만 가장 판매가 저조한 음반이 되었으며 이미 작곡가로 이름을 날리던 이두헌은 이후 편곡자나 음악 프로그래머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90년의 시작과 함께 다섯 손가락이란 이름은 그후 다시 거명 되지는 않았다. 이두헌은 유학을 떠났고 임형순은 솔로 음반의 실패로 음악의 언저리에서 맴돌아야 했다. 나머지 멤버들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서 키보드 주자로 활동하는 최태완처럼, 가끔 세션으로 여러 음반에서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2001/06 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