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구- Golden Best 50



김정구 - 노다지 타령

노다지 노다지 금노다지
노다진지 칡뿌린지 알 수가 없구나
나오라는 노다진 안 나오고
칡 뿌리만 나오니 성화가 아니냐
앵여라차 차차 앵여라차 차차
못보는 노다지야 어디가 묻혔길래
요다지 태우느냐 사람의 간을
앵여라차 차차 앵여라 차

노다지 노다지 금노다지
노다진지 칡뿌린지 알 수가 없구나
나오라는 노다진 아니 나오고
칡뿌리만 나오니 성화가 아니냐
앵여라차 차차 앵여라차 차차
논 팔고 집 팔아서 모조리 바쳤건만
요다지 태우느냐 사람의 간을

노다지 노다지 금노다지
노다진지 칡뿌린지 알 수가 없구나
나오라는 노다진 안 나오고
칡 뿌리만 나오니 성화가 아니냐
앵여라차 차차 앵여라차 차차
논 팔고 집 팔아서 모조리 바쳤건만
요다지 태우느냐 사람의 간을

  1. 노다지 타령
  2. 왕서방 연가
  3. 눈물젖은 두만강
  4. 바다의 교향시
  5. 총각 진정서





가수 김정구는 1915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났다.
5남매 중 셋째였는데, 형제가 모두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집안이었다고 한다.
맏형은 가수와 작곡가를 겸했던 김용환, 김정구의 형수이자 형 용환의 아내였던 정재덕도 가수로 활동했고, 누나 김안라는 소프라노가수였다.
동생 김정현은 피아니스트였었다.
기독교 집안의 분위기가 이런 여건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들 형제는 가족노래선교단을 꾸려 동해안과 금강산 부근의 마을을 다니며 연주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김정구는 원산의 광명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점에서 점원 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1936년 서울로 가서 가수가 되려는 계획을 실천에 옮기게 된다.
김정구의 첫 데뷔는 뉴코리아레코드사였다.
'어머님 품으로' '청춘 란데뷰' 등의 음반을 발표하고, 단번에 인기가수 명단에 오르게 되었다.
뉴코리아레코드사는 경영난으로 1년이 채 안되어 문을 닫게 되었고, 김정구는 오케레코드사 창설의 숨은 주역인 김성흠의 제의를 받아 오케로 소속을 옮기게 되었다.

1937년 오케레코드사에서 발표한 첫 작품은 '항구의 선술집'(박영호 작사, 박시춘 작곡, 오케 1960)이다.
'부어라 마시어라 이별의 술잔/ 잔우에 찰랑찰랑 부서진 하소'로 이어지는 이 노래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당시 청년들의 마음을 완전히 매료시켰다고 한다.
말 그대로 오케레코드사의 간판격 가수이자 인기가수로 등극한 김정구는 1937년 한 해 동안 무려 18곡이 넘는 가요를 발표한다. 당시 부른 노래는 '황금송아지' '눈깔 나온다' '뽐내지 마쇼' '광란의 서울' '백만원이 생긴다면' 등으로 곡목만 보더라도 일그러진 식민지 현실에 대한 냉소와 풍자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런 노래를 만요풍(漫謠風)의 노래라고 합니다. 김정구가 무대에서 이런 만요풍 노래를 부를 때는 반드시 코믹한 제스처를 사용해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당시 김정구 노래의 가사는 주로 박영호, 작곡은 손목인과 박시춘 등이 각각 전담하다시피 했다.

이후로 크게 히트했던 김정구의 노래는 '왕서방 연서' '총각진정서' '앵화폭풍' '바다의 교향시' '철나자 망녕' '월급날 정보' '모던 관상쟁이' '세상은 요지경' '수박행상' '낙화삼천' '뒤져본 사진첩' '장모님전 상서' 등이다.
일제 말 조선악극단 도쿄 공연 때 김정구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듯 했다고 한다.

통한의 6·25가 일어나자 김정구는 가족을 이끌고 부산으로 피란내려와 떠돌이 빵장수, 지게꾼, 무대 출연 등으로 고달픈 생존을 이어갔다.
1975년 가수 김정구는 회갑을 맞아 성대한 기념무대를 마련한다.
정부가 수여하는 훈장도 가수로서 맨 처음 받았고, 가는 곳마다 오로지 '눈물 젖은 두만강'만이 김정구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1985년은 가수 김정구에게 매우 뜻깊은 한 해였다.
왜냐하면 떠나온 고향 북녘 땅에서 열리는 고향방문단 특별공연에 출연하여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북한 주민들 앞에서 목이 터져라 불렀기 때문이다.
모든 원로가수가 하나 둘 세상을 떠나 무대에서 사라질 때 김정구는 칠순이 넘은 나이로 노익장을 과시하며 여전히 왕성한 무대 활동을 계속했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런 모습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기도 했다.
마침내 1992년 김정구는 노환으로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진작 이민을 간 가족들 곁으로 갔습니다 떠나갔다.

1992년 9월25일, 가수 김정구는 향년 77세로 미국 땅에서 쓸쓸히 세상을 했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한반도의 북녘 하늘로 이승의 모든 속박과 부자유에서 풀려난 김정구의 영혼은 산새처럼 훨훨 날개를 저어 찾아갔을 것이다.
'눈물 젖은 두만강'을 열창하던 김정구의 구수한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시인·영남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