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희 - 세월이 가면




세월이 가면

박인환 詩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詩人 박인환

6,25 동란의 폐허로 불안과 허무를 경험했던 문학인, 예술인들이 명동거리로 모여들었다.

전후의 상실감 속에서 고독, 허무, 애상에 젖어있던 그들은 명동의 도회적 분위기 속에서 시나 글, 노래 등을 통해 당시의 시대적 아픔을 달래곤 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이 시는 도회적 감수성과 애련한 서정으로 사랑의 기억을 가슴에 추억으로 남기고 있다.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은 그의 마지막 유작으로, 1956년 어느 봄날 명동에 있는 술집 경상도집에서 씌어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자리에는 시인 조병화, 극작가 이진섭, 가수 나애심 등이 박인환과 같이 있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박인환이 '세월이 가면'이란 시를 쓰자 그것을 본 이진섭이 곡을 붙였고, 그것을 나애심이 불렀다고 한다.

명동의 경상도집은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한 술집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