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umoresque (유모레스크)란 19세기의 한 기악곡에 붙여진 이름인데, 유머가 있고 얼마간 희롱기가 있는 성격의 곡으로 슈만, 루빈스타인, 차이코프스키 등 여러 작곡가들이 이미 유모레스크라는 곡을 만든 바 있지만, 그중에서도 드볼작의 것이 가장 유명하다.
원곡은 피아노곡으로 작곡되었으나 후에 바이올린곡으로 편곡되었고, 오늘날에는 바이올린 반주용이 원곡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곡은 드볼작이 미국 국립 음악원장으로 재직 중 휴가차 들린 고국에서 작곡한 곡으로 우아한 가요 풍의 리듬에 언뜻언뜻 비치는 슬픔에 가볍게 튀는 듯한 발걸음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아름다운 무곡이다.
* 안토닌 드보르작
(Antonin Dvorak, 1841~ 1904, 체코)
'드보르작'은 푸주간 겸 여관업을 하는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드보르작'은 가업을 이어받기 원하는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16세때 프라하의 오르간 학교에 입학하여 고학으로 졸업했다.
카렐 코므자크 악단의 비올라 주자로 첫 발을 내디딘 그는, 이 악단이 프라하 가극장 소속 오케스트라에 통합되고, 거기에 스메타나가 지휘자로 취임하면서 연주와 작곡생활을 본격적으로 병행하기 시작했다.
'드보르작'은 또한 일찌기 바그너와 브람스가 매료된 바 있는 슬라브 특유의 민속적 요소에도 눈을 떴다.
자식들을 잃고 슬픔 속에서 작곡한 교회음악 <스타바트 마테르>, 브람스의 소개로 시작하게 된 <슬라브 무곡 1집> 등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드보르작'은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40대에 들어서면서 국제적인 작곡가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1891년엔 차이코프스키의 초대로 러시아를 방문했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지휘자로서도 명망을 얻은 '드보르작'은 1891년에 뉴욕의 미국립음악원의 원장으로 취임하여 1895년까지 일했다.
그 당시에 쓰여진 것이 그의 9번 교향곡 <신세계에서>와 현악 4중주 12번 <아메리카>같은 곡이었다.
미국 생활을 마치고 프라하로 되돌아온 그는 1904년 그 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200곡이 넘는 그의 작품들에선 체코 민속음악 형식이 가미된 이성주의와 후기 낭만주의의 표현력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Dvorak - Humoresque